[경남일보] [경일시론]산악 기록의 가치 2026.08.10 > 보도자료

본문 바로가기

보도자료

[경남일보] [경일시론]산악 기록의 가치 2026.08.10

profile_image
최고관리자
2026-08-11 12:01 64 0 0

본문

 

642966_443646_471.jpg

한중기 논설위원

 

한국 산악사의 소중한 자료를 한데 모은 ‘한국산악아카이브’가 달포 전 공개됐다.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120여 년 동안 국내 산악인들의 활동과 관련된 자료 1만 2900여 종을 디지털로 집대성했다. 산악단체의 회보와 등반계획서, 등반기, 학술자료, 단행본은 물론 사진과 영상까지 다양한 자료를 담았다. 산악 교재와 행사 자료집, 산악인들의 육필 원고와 편지 같은 1차 기록물까지 망라했다.


120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디지털화했다니, 그 자체가 한국 산악사의 거대한 기록물이다. 더 반가운 것은 경남의 산악 역사도 상당 부분 담겼다는 점이다. 한국산악회 경남지부 회보와 경남학생산악연맹 연보, 경상국립대와 경남대 산악부의 활동 기록을 비롯해 초오유와 눕체 서봉, 에베레스트 원정계획서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산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직접 참여하거나 취재했던 산악활동의 흔적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다. 수십 년 전의 자료를 마주하니 한때 함께 산을 오르던 사람들의 모습과 당시의 열정, 두려움과 도전이 새삼 되살아난다. 한 장의 회보와 한 편의 등반보고서가 단순한 옛 문서가 아니라 한 시대 산악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생생한 역사가 되는 순간이다.


한국산악아카이브 구축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산을 오르는 행위 자체가 기록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산악활동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루트가 있으며, 한 시대의 산악문화가 깃들어 있다. 어느 산을 누구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루트와 장비로 올랐는지, 캠프 사이트는 어디에 구축했는지 등을 남기는 일은 산악활동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산행 계획을 짤 때면 기록 담당을 따로 정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었다. 개인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행의 과정과 성과를 남겨 다음 산행과 후대의 산악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록은 남기는 것만큼 모으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 많은 자료가 여전히 개인 책장이나 앨범 속에 사장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악회가 해산되면서 회보가 사라지고, 원로 산악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기억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산악회의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록을 남겼지만 그것을 지켜낼 사람이 없다면 산악사의 한 페이지도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산악기록은 산악인들만을 위한 자료가 아닌 공공재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지리산 유람록이 보여주듯 옛 산행 기록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산길과 마을, 자연환경과 문화유적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풍경과 견주어 보면 지난 세월 동안 무엇이 달라지고 사라졌는지도 읽어낼 수 있다. 산악활동의 변천은 교통과 장비, 통신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생활방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까지 보여준다. 산악사는 곧 민초들의 생활사이며, 한 시대의 사회문화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산악활동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지리산을 비롯한 국내 산악활동뿐 아니라 히말라야 등 해외 원정 기록과 산악인들의 활동 자료까지 발굴하고, 흩어진 회보와 사진, 원정기와 산행기를 디지털화한다면 한국 산악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산악아카이브가 그 역할에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만큼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있을 것이다. 120년 한국 산악사를 온전히 아우르는 아카이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하고 확보해야 한다. 자료의 저작권과 이용에 관한 문제도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산악계와 자료 소장자, 관련 기관이 지혜를 모은다면 하나씩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흩어진 기록을 찾아내고, 잊힌 기억을 되살려 온전히 후대에 전하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산악인들의 또 다른 산행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출처 : 경남일보(https://www.gnnews.co.kr)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