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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탐방] 『조선산악회 제4차 국토구명사업 ‘울릉도ㆍ독도 학술 조사대’ 1, 2』, 김재문 촬영,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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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16~28일 13일간 총 65명이 참가한 조선산악회 제4차 국토구명사업 '울릉도ㆍ독도 학술조사대' 환영행사

 

조선산악회가 1947년에 크게 추진했던 <제4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과 관련된 사진이다. 

 

조선산악회(1950년 한국산악회로 개칭)는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15일 창립했으며, 창립 초기 약 10년 동안 국토구명학술조사를 핵심 사업으로 삼아 모두 11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국토의 구명(究明)이란 "비교적 근접키 어려운 우리 국토의 변역을 과학적으로 조사하여 우리 사회에 널리 밝히고 소개"한다는 뜻을 두었고, "우리 강토를 우리 손으로 구명한다는 목적" 아래 1946년 제1차 제주도 한라산을 시작으로, 같은 해 2차로 오대산 일대 태백산맥을 답사했다. 이어 1947년에는 3차 소백산맥에 이어 4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가 실시됐다.

 

이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에는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13일간 65명이 참가해 활동했다. 전체 학술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사업이었다. 

 

첨예한 지정학적 상황에서 출범한 학술조사단이었다. 사업 2개월 전인 6월에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고, 그에 따라 과도정부가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한 시점이었다. 상황이 엄중했던 만큼 과도정부는 독도조사대를 전폭 지원하는 한편, 별도로 4명의 독도조사단을 동행하도록 했다.

 

학술조사단은 필요한 각종 물품은 물론, 서울~포항 간 기차와 포항~울릉도~독도 사이의 선박 등 교통편에 대해서도 과도정부와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았다.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과 1953년에도 정부와 긴밀한 협력 아래 추진됐다.

 

이 아카이브에는 1947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활동 당시 촬영한 사진들이 담겨 있다. 울릉도에서의 환영식, 학술강연회, 울릉도와 독도의 다양한 모습, 주민들의 생활상, 대원들의 활동 모습 등 현장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이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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