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거산 개척등반기 도봉산편』, 『설악산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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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길, 범봉연봉, 표범길 초등반 기록 전격 공개!
요델산악회 창립자 백인섭 저 『나의 작은 거산 개척등반기 도봉산편』, 『설악산편』
설악산 석주길은 한국의 바위꾼이라면 안 올라본 이가 없을 명품 등반로다. 도봉산 선인봉 전면의 표범길 또한 박쥐길과 더불어 선인봉 암벽의 상징과도 같은 등반루트다. 요델산악회 창립자로서 이들 루트의 초등반을 이끈 백인섭씨가 초등반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책자 <나의 작은 거산 개척등반기 도봉산편>과 <설악산편>을 본 한국산악아카이브에 전격 공개했다.
현재 이 책자 두 권은 교보문고에서 POD(Publish On Demand) 방식, 즉 주문이 있을 때만 인쇄, 제본해 정가 1만원씩에 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애초 출판 목적이 이들 루트의 초등반기록과 나의 산악관을 좀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기에 기꺼이 한국산악아카이브에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설악산 석주길에 얽힌 이야기처럼 꾸며진 이야기들이 사이버공간을 타고 전설처럼 퍼지고 굳어져 때론 오히려 사실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는 고의적인 거짓 또는 와전에 의해서 개척자가 엉뚱한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했다’는 게 또한 이 책자들을 내게 된 이유라면서, 산악아카이브를 통해 이러한 오류도 두루 바로잡히길 바란다고 저자는 말했다.
1960년대 초까지 도봉산 전면 등반 루트는 A, B, C, 박쥐, 그리고 서쪽 측면, 남측, 그리고 인공등반루트로서 남측 오버행 뿐이었다. ‘암봉 밑에서 봉우리까지 이어져 있는 연속된 등반선은 그것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저자 백인섭씨는 여기에 더해, 얼핏 보면 단절된 것 같은 크랙들과 ‘눈이 덮였을 때면 드러나는 등반 가능한 슬랩’들을 연결해 새로운 등반선들을 창조했다. 64년 만장봉 낭만길, 선인봉 서측 양지길, 65년 선인 전면벽 허리길, 66~67 선인 전면 표범길이 그것이다. “낭만길은 요델산악회원들이 어울려 오르며 우의를 다지기에 좋은 낭만적 선으로서 연결했기에 그렇게 명명했고, 양지길은 한겨울에도 회원들과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는 따듯하게 햇볕을 받는 바위면을 골라 개척한 루트이기에 그런 이름을 주었다”는 술회에선 요델산악회와 그 회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읽힌다.
놀랍게도 그는 이들 루트 대부분을 위에서부터 로프를 내려서 정찰하거나 사전 시등을 해보지 않고 곧바로 등반하며 뚫어냈다. 표범길도 마찬가지로 올라가면서 ‘손가락으로 크랙의 흙을 파내며, 다쳐서 피를 흘리기도 하며’ 등반해냈다. 물론 등반한 크랙에서 다음 크랙 출발점으로 어떻게 연결해가면 좋을 지 여러 번 피치 끝까지 올라가선 반복해 관찰, 궁리한 끝에 루트를 이어가곤 했다. 박쥐똥 무더기를 손으로 긁어내고, 하켄이 빠지며 20여미터 추락도 하는 등의 고생 끝에 표범길을 완성했다. 거기에 쓴 장비들이, 특히 등반화가 미제 군용 워카를 발목까지만 남기고 자른 것인 데에 이르러서는 말을 잃게 된다.
1967년 봄 천화대능선의 상징으로 솟은 범봉 초등에 이어 그는 ‘설악산에서 가장 멋진 암능’ 석주길을 1968년 5월 송준호, 오세진 후배와 개척했다. 자신을 포함, ‘단 3명으로 구성된 특공대 같은 단출한 등반대’를 꾸려 ‘2일 정도의 비상 식량과 간단한 비박장비, 암벽장비만으로 무장’하고 그 자신이 선등하여 올랐다. ‘썩은 바위나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바윗돌들을 수도 없이 낙석시키면서 암릉의 꼭지점으로만 등반’을 해냈다.
석주길이란 루트 이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밝혔다. “성격도 좋고 몸도 날렵해서 운동도 잘해서 내가 각별히 아꼈던 후배 엄홍석과 당시 신입회원이었던 신현주 두 사람이 20일간의 하계 장기등반이 끝나고 휴식일에 비선대계곡에서 실족 추락해 익사했고, 노루목에 합장하며 사후 결혼식을 올려주는 한편 두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두 사람 이름 끝 자를 따서 지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글과 더불어 게재한 흑백 사진들 또한 적잖이 흥미롭다. 짐을 미처 모두 눌러 담지 못하고 위에 로프 등속을 얹어 엄청나게 무거워뵈는, 상체를 자꾸만 뒤로 잡아당기는 듯한, 그러므로 필경 멜빵이 어깻죽지를 결딴낼 듯 파고들었을 구닥다리 키슬링을 메고서 오르는 모습들이 뵌다. 저자는 “등반 개시 직전 대원들 간 짐 무게 문제로 다투는 일이 없게끔 항상 저울을 가지고 배낭 무게를 달았다”는데, 주로 미제 군용 제품이 장비의 대부분이었기에 식량, 식수까지 포함하면 40~50kg 나가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어떻게 등반을 했을까 싶다. 저자는 “이 어쩔 도리 없는 장비 무게 때문에 등반시작지점까지 최대한 근접해 비박한 다음 속전속결로 등반을 해야 했다”고 술회한다.
<나의 작은 거산 등반기 설악산편> 제5화 범봉 연봉 초등은 그러한 등반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범봉 연봉은 지금 클라이머들이 천화대리지라 부르는 암릉루트의 상단부로서, 석주길이 갈라져나가는 지점부터 범봉까지 연이어진 암봉 능선”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69년 5월 말, 그는 워낙 길어서 하루만에 해내기가 어려워뵈는 이 범봉 연봉을 ‘최소한의 장비와 식량만 지니고 24시간, 무박2일 동안 개척등반’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헤드랜턴이란 장비란 상상조차 못했던’ 등반대는 한손에 손전등을 들고 등반할 수는 없었기에 등반일을 보름날에 맞춰서, 손전등 대신 보름달빛을 이용해서 등반을 했다. ‘이미 그동안 몇 차례 도봉산과 북한산에서 보름달 밤에 달빛만으로 암벽을 올라본 경험으로 비추어 충분히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범봉 아래에서 비박 후 시작지점까지 접근, 저물기 전에 첫 봉우리에 오른 다음 저녁식사 후 보름달빛이 능선을 밝힐 때 등반을 시작했다. 혹여 날씨가 급변해 비가 내릴 지도 모르므로 비닐을 한 겹 속옷과 겉옷 사이에 두르고 ‘그날 따라 유난히 크게 보이는 보름달 덕분에 손전등을 켤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며’ 등반을 했다. 선등하던 그는 그러나 흔들리는 암괴 위에 올라섰다가 20여미터 추락, 한동안 매달렸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연중 200일 이상 산에 머무르지 않으면 산악인이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저자는 해발 1천미터도 안되는 도봉산, 2천미터도 안되는 설악산을 나의 작은 거산이라 부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설악산이 비록 알프스보다는 낮아도 루트를 잡기에 따라 알프스 못지않을 어렵고도 보람 있는 등반이 가능했어요. 잦은바위골~공룡능선~봉정암 루트를 겨울에 후배들과 1968년이란 시점에 4박5일에 걸쳐 동계 초등반한 것도 그런 것이라 봐요. 유럽 알프스에 간다고, 히말라야 거봉 등반을 간다고 이렇게 다채롭고 다양하게 루트를 잡아 오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꼭지점에 내 뜻한 대로 올라 더없는 자유를 느끼고 할 수 있었을까요? 도봉산과 설악산은 나에겐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깊은 산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을 택해 오르는가에 따라 해발 1000미터급의 작은 산도 엄청난 거산이 될 수 있음을, 뒤이어 자기 인생도 바라보고 대하기 나름이라는 새삼스런 깨우침을 이 책자들은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저자 약력: 아호 백석(白石). 1942년 서울 출생. 1963년 요델산악회 창립. 경복고, 서울대 공대(전기공학), 한국과학기술연구소(선임연구원), 카이스트(전산학 석사), 프랑스 IMAG(전산학 박사), 데이콤(초대연구소장), 아주대 정보통신대 교수 역임.
정리/안중국
